사회이야기

[서울의봄 정보] 하나회 명단(사진), 특징 등 총정리

죠리퐁펑 2024. 3. 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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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명단(사진) 자세히 정리

하나회 명단(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군 내 파벌(하나회)의 태동



  하나회의 태동은 1960년대 초반, 한국 군사정권 내부의 복잡한 권력 구조와 그 중심에 선 박정희의 권력 안정화 전략에서 시작된다. 이 시기는 5.16 군사정변 이후 군 내 파벌이 권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때로, 특히 이북 출신 장교들과 영남 출신 장교들 간의 갈등이 두드러졌다.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안정화하고, 군 내에서의 이북 출신 장교들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영남 출신 장교들로 구성된 사조직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나회'의 명칭과 의미


  하나회라는 이름은 '국가도, 우정도, 충성도 하나'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명칭은 조직의 핵심 가치인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회원 간의 끈끈한 우정 및 연대감, 그리고 조직의 결속력을 강조한다. 이러한 명칭은 박정희와 하나회 회원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군사 조직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하나회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회 결성의 배경


  하나회의 결성 배경에는 군 내 이북 출신 세력의 견제와 박정희 정권의 안정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다. 군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박정희는 자신과 같은 영남 출신이자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충성스러운 장교들을 중심으로 하나회를 조직했다. 이 조직은 군 내 요직을 장악하고, 군사정권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하나회의 조직 구성과 운영


  하나회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영남 지역 출신의 장교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가입 절차는 매우 엄격했으며, 새로운 회원은 기존 회원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만 했다. 이 조직은 군 내 진급 및 보직 배정에서 특혜를 받는 등, 군사정권 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나회의 가입 절차와 선발 기준


  하나회의 가입 절차와 선발 기준은 이 조직의 엄격한 내부 규율과 철저한 비밀주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이 과정은 단순히 군대 내의 한 모임을 넘어선, 군사정권 아래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직 구성을 목표로 했다.

 

  • 지역 기반 선발: 주로 영남 지역 출신 장교들로 구성되었으나,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 다른 지역 출신도 가입할 수 있었다. 이는 영남 지역 출신 박정희와의 지역적 연대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 성적 우수성: 육군사관학교에서의 학업 성적이 우수한 자를 우대했다. 특히, 성적 우수자 중에서도 리더십과 군 내에서의 영향력이 기대되는 인물을 중점적으로 선발했다.
  • 정치적 성향: 박정희 정권에 대한 충성과 지지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성향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반정부 성향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은 배제되었다.
  • 이북 출신 배제: 군 내 이북 출신 세력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이북 출신 장교는 원칙적으로 가입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 가입 절차 추천과 심사: 기존 하나회 회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이후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심사가 진행되었다. 심사 과정에서는 후보자의 성향, 배경, 지역적 연결고리, 군 내에서의 평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었다.
  • 만장일치 동의: 후보자가 최종적으로 하나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회 내부의 긴밀한 연대감과 조직의 일체감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가입 의식: 가입이 승인되면, 하나회의 가입 의식이 진행되었다. 후보자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가입 선서를 하고,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충성과 의리를 다짐한다. 이 의식에는 적포도주를 마시는 등의 전통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신입 회원의 하나회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2.12 쿠데타 핵심 세력의 탄탄대로


  1979년 12월,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12.12 군사반란은 군내 비밀결사조직인 하나회의 주요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의 계획적인 움직임은 국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쿠데타의 심장, 주동자들

  • 전두환(극중 전두광): 육사 11기 출신으로, 국군보안사령관 소장 직책을 맡으며 쿠데타를 주도했다. 쿠데타 후, 중장, 대장으로 진급하며 대한민국 제11, 12대 대통령에 오르는 탄탄대로를 밟았다.
  • 노태우(극중 노태건): 역시 육사 11기 출신으로, 제9보병사단장 소장이었다. 쿠데타 성공 후 수도경비사령관 및 국군보안사령관을 역임하고, 대장으로 진급한 뒤 내무부 장관 등을 거쳐 전두환의 뒤를 이어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략가들, 보안사의 역할

  • 허화평: 육사 17기 출신으로, 전두환의 보안사 핵심 참모 중 한 명이었다. 준장으로 진급 후 예편하여 청와대 보좌관으로 활약하며 초기 5공화국 정권의 핵심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 허삼수: 같은 육사 17기 출신으로, 허화평과 함께 전두환의 보안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준장으로 예편한 뒤, 청와대 보좌관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 이학봉: 육사 18기 출신으로, 보안사 핵심 참모 중 한 명이었다. 준장으로 진급한 후, 민정수석 및 안기부 차장 등으로 활약하며 전두환 정권 내내 측근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수경사의 지휘관들

  • 장세동: 육사 16기 출신으로, 제30경비단장 대령이었다. 준장으로 진급 후, 전두환에 의해 청와대로 데려가 대통령경호실장과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하며 5공화국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 김진영: 육사 17기 출신으로, 제33경비단장 대령이었다. 쿠데타 이후 중추적인 군 직책을 거치며 소장, 중장,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하나회 숙청 때 1번으로 숙청되었다.

육군본부 및 사단장들

  • 정호용: 육사 11기 출신으로, 제50보병사단장 소장이었다. 쿠데타에 참여한 후, 육군특수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내무부장관 등을 역임하며 하나회 정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박준병: 육사 12기 출신으로, 제20보병사단장 소장이었다. 인사운영감 및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중장으로 진급해 국군보안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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